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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유익한 자료실

영국해군의 대형수송선 '버큰헤드호' 이야기


영국해군의 대형수송선 '버큰헤드호'

 



1852227일 새벽 2, 영국의 대형 수송선(1,918톤짜리 외륜증기선) '버큰헤드호'는 사병과 그 가족들 630여명을 태우고 남아프리카로 향하던 중 케이프타운 항에서 65km 쯤 떨어진 지역에서 배가 암초에 부딪히게 됩니다. 순간 기우뚱한 배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서로 보트에 타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이 배에 타고 있던 승객은 영국 73 보병연대 소속 병사가 472명이었고 그들의 가족 162명이 승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명보트는 단 3대뿐이었고 보트 하나당 정원은 60명이었습니다.  

배는 점점 가라앉는데 바다에는 상어떼가 우글거렸죠, 지옥이 따로 없을만큼의 아수라장 속에서 갑자기 북소리가 울립니다. 그러자 병사들이 반사적으로 갑판으로 우르르 집결합니다.

세튼 대령(함장)'차렷!'하고 구호를 외치자. 병사들은 일제히 그 자리에서 부동 자세를 취합니다


세튼 함장은 병사들을 바라보며 외칩니다.

"제군들은 들으라! 가족들은 그 동안 우리를 위해 희생해 왔다. 이제 우리가 그들을 위해 희생할 때다!

어린이와 여자부터 보트에 태워라! 대영제국의 남자답게 행동하라!" 

세튼 함장의 명령에 횃불이 밝혀지고 승무원들은 곧바로 어린아이와 여자들을 구명보트에 태우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구명보트가 떠날때까지 병사들은 차렷자세로 그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보트에 옮겨 탄 가족들은 부동자세를 유지한 채 바닷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남편과 아버지를 보며 울부짖었다.

 

이렇게 보트에 태워져서 살아남은 승객은 전체 600명중에서 단 193 뿐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영국에서는 '약한 여자와 어린이가 먼저'라는 전통이 만들어졌습니다.

바로 '버큰헤드호 정신'입니다

그 후로 영국인들은 어떤 사고가 터질때마다 "버큰헤드호 정신으로!" 라고 외칩니다.

이 구호를 들은 사람들은 우왕좌왕 하다가도 곧 숙연해진다고 합니다

 

목숨을 건진 사람 중의 하나인 91연대 소속의 존 우라이트 대위는 나중에 이렇게 술회했다.  

모든 장병들의 의연한 태도는 최선의 훈련에 의해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누구나 명령대로 움직였고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 명령이라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모두 잘 알면서도 마치 승선 명령이나 되는 것처럼 철저하게 준수하였다.”

 

이 사건은 영국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버큰헤이드 호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명복을 비는 기념비가 각지에 세워졌다.

 

이전까지는 배가 해상에서 조난될 경우 저마다 제 목숨부터 구하려고 큰 소동을 벌이고는 했다.

, 힘센 자들이 구명정을 먼저 타고 연약한 어린이와 아녀자들이 남아 죽어야 했다.

 

가슴이 저미는 이야기지만 전후 관계가 불투명한 구석이 있다.

승선 인원 643명 가운데 193명이 살아남았는데 '전원 구조되었다'는 여자와 어린아이는 전부 합쳐 20. 나머지 생존자는 모두 군인이었다.

사고가 새벽 2시에 발생했는데 가족들이 보트에서 침몰 순간을 제대로 목격했다는 점도 의문이다.

사건이 널리 알려진 것도 발생 직후가 아니라 7~8년의 세월이 흐른 뒤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1859)키플링의 시 버큰헤이드 드릴(1860)이 출간된 뒤다.

무게 3톤에 달하는 금화를 왜? 배에 적재 했느냐도 논란거리다. 억측이기를 바라지만 병사들을 집합시킨 진짜 이유는 혼란을 틈탄 금화 탈취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다.

그후 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89년 해저에서 금화가 발견될 경우 양분한다는 협정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