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자료]/산행후기

[통영]천암산(258m),여황산 산행후기---2019년 10월 4일(금)

산행자 2019. 10. 7. 13:35


[통영]천암산(258m),여황산 산행후기

 

산행일자 : 2019104(금)  

산행코스 : 갈목마을(버스정류소)천암산해성아파트갈림길작은개갈림길명정산불감시초소약수암갈림길명정고개어민회관·북포루갈림길여황산(북포루)서피랑공원서포루→세병관→동파루→통영중앙시장

산행시간 : 9.7km, 4시간 소요

산행개요

   이번 산행은 천암산(天岩山·257.9)을 비롯해 장골산(179)과 여황산(174)까지 모두 200안팎의 봉우리 3개를 연결한다. 처음 시작할 때와 중반 이후 명정고개에서 북포루로 올라가는 초입을 제외하면 긴 오르막이 없다. 대부분 구간이 짙은 숲길이라 한여름에도 햇볕을 피해 걸을 수 있다. 갈목마을에서 명정고개까지는 찾는 이가 많지 않아 호젓한 숲속 분위기를 만끽하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 명정고개에서 북포루로 올라가는 길에는 하늘을 가린 울창한 편백 숲이 상쾌하다. 숲길 중에 틈틈이 조망이 트이는 바윗길이 나와 단조로운 산행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갈목마을에서 출발해 처음 올라갈 때는 서쪽으로 바로 앞에 있는 목섬을 비롯해 장도, 필도가 줄이어 선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좁은 바다 너머 미륵도가 눈앞이다. 북쪽으로 조망이 열리는 곳에서는 통영의 진산인 벽방산이 뚜렷하다.

코스의 막바지에는 통영성지의 한 부분인 여황산(174m) 정상인 북포루를 거쳐 서포루로 하산한다. 17세기 만든 통영성은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철거돼 민가와 도로가 들어서 지금은 흔적만 남았다. 북장대로도 불리는 북포루는 1993년 복원했는데 콘크리트 기둥이나 바닥재가 아쉬움을 준다. 남쪽으로 통영항과 미륵도를 바라보는 자리에 있는 북포루는 옛적에는 왜적의 침입을 대비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땀 흘리며 올라온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조망처 역할을 한다. 통영의 새로운 명소인 서피랑마을 뒤에 자리 잡은 서포루에서는 동쪽으로 강구안 항구는 물론 통영 시가지 일대가 고스란히 눈에 들어온다.

산행 후 서피랑공원에 올라 서포루 조망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만든 배수지를 구경하고 인근에 있는 박경리 생가와 사적 제236호인 충렬사, 세병관, 서피랑 일대를 둘러보면 휴가철 짧은 통영 여행으로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승용차를 이용한다면 산행을 마치는 서피랑공원에 주차하고 택시로 출발지인 갈목마을로 이동하는 게 편하다. 택시비는 약 7000원 내외며,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경남 통영시 충렬176-38 박경리 생가로 해서 찾아가면 서피랑공원 입구가 바로 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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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동파루

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 북신동 238 경남기념물 제106호로 면적 156,851, 둘레 약 3,660m, 높이 약 4.7m, 너비 4m이다 19911223일 경상남도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되었다. 왜적을 방어하고 거주지와 생업지를 갈라 놓는 두 가지 목적으로 1678(숙종 4)에 통제사 윤천뢰(尹天賚)가 축성하였다. 해발 174.2m, 높이 4.7m, 너비 4m, 둘레 약 3,660m이다. 북문 북쪽의 여황산 기슭에서 서문 북쪽의 산기슭까지 여황산 양쪽 등성이 약 1km는 토성이고 나머지는 석성이다. 토성은 산등성이를 이용하여 기단부는 삭토식(削土式)으로 조성하다가 상부로 오면서 석심(石心)을 넣고 흙을 다지면서 사다리꼴 모양으로 쌓았고, 석성은 남문을 위시한 4대문과 2암문(暗門) 양쪽에는 네모 반듯하게 다듬은 무사석으로 협축(夾築)하였다. 나머지 부분은 지세를 따라 사행(蛇行)으로 가면서 자연석으로 바깥쪽을 물림쌓기로 축성하고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밋밋하게 쌓아올린 내탁공법을 취하였다.1985년 통제영이 없어지고 일제강점기에 성벽과 문루가 훼철되어 지금은 토성의 유지와 석성의 일부분만 남아 있다. 옛 통영성에는 동서남북 4대문과 2암문, 그리고 동··북쪽에 3포루(鋪樓)가 있었다. 동문은 홍예문(虹霓門)으로 축성할 때 함께 지었는데, 1748년 통제사 장태소(張泰紹)가 신흥문(新興門)이라는 편액을 문루에 걸었고, 1792년 통제사 이윤경(李潤慶)이 고쳐 지으면서 춘생문(春生門)이라 하였다. 서문 역시 홍예문으로 축성 때 함께 지었는데 1790년 통제사 신응주(申應周)가 고쳐 짓고 금숙문(金肅門)이라 하였다. 남문도 홍예문으로 축성시에 지었는데 일명 청남루(淸南樓)라 하였다. 1843년 통제사 허계(許棨)가 중수하였다. 북문은 통영성을 축성할 당시에는 문루가 없었으나 1771년 통제사 원중회(元重會)가 문루를 짓고 이름을 공북루(拱北樓)라 하였는데, 일명 의두문(依斗門)이라고도 하였다. ·남의 두 암문은 성을 쌓을 때 함께 만들었는데 문루가 없었다. 동암문은 일명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불렸는데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항상 잠가 두었다고 한다. 3포루는 1694년 통제사 목림기(睦林奇)가 세웠다. 통영성을 방비하던 산성중군(山城中軍)이 순찰과 경비를 하던 초소로 때로는 장수가 이곳에서 군사들을 지휘하였기에 장대(將臺)라고도 하였다.

북포루는 여황산 정상에 있었는데 북장대라고도 불렀으며 19932월에 복원되었다. 동포루는 성 동쪽 동피랑 꼭대기에 있어 동장대,

서포루는 성의 서쪽 서피랑 꼭대기에 있어 서장대라고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