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성한의원)이라 입력하면 몇가지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늘 그렇듯이, 모르는 길을 처음
가려하면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더구나 알려지긴 했지만 한의원 자체가 워낙 작고 시골에 있다보니 찾아가는 길도 만만치
않고 막상 그 앞에 가서도 이 한의원이 맞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혹시 찾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하여 방문했던 길을 안내하고자 한다.
1. 상호 및 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에 위치한 해성한의원이다. 간혹 혜성한의원이라 알려지기도
했는데, 정확한 명칭은 해성한의원이 맞다. 봉화 해성한의원이라 부르는건 봉화군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혹시라도 혜성한의원이라 알고 검색할것에 대비하여 제목에
두가지를 모두 기록하였으나, 정확히는 해성한의원이다.(전화번호 054-672-5041)
2. 위치
자가용을 이용했기 때문에 다른 교통편에 대한 안내는 하지 못하겠다. 게다가 자가용을
이용하더라도 그 길이 만만치 않다. 왜냐하면,, 시골 한구석에 있기 때문이다. 끔찍하게
찾아가기 어려운건 아니지만, 지도 펴놓고 찾아가기도 쉬운 곳은 아니다.
간단히 찾아가는 방법은 "상운면사무소"를 찾는 것이다. 네비게이션이나 기타 지도검색
등을 통해서도 상운면사무소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해성한의원은 상운면사무소
바로 건너편에 있다.(20미터)
중앙고속국도 풍기 IC에서 나오는데, 거기서부터는 국도 타고 20킬로 정도 가야 하고,
게다가 생각보다 길도 복잡하니 천천히 지도보고(네비 켜고) 상운면사무소를 찾아가야
한다.
상문면사무소 맞은편에는 양쪽 도로 어디에서 오더라도 볼 수 있도록 간판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골목으로 들어가면 주차할만한 공간이 나오고 바로 집 문앞에 해성한의원이라
적혀있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접수대가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곳은 시골이다. 따라서 현대적
건물이나 접수창구를 생각하면 안된다. 그냥 시골 집에 접수라 써놓은 정도다.
주중에는 시간이 좀 한가한데 주말에는 예약 손님때문에 빡빡하다고 한다.
접수를 하면 식권을 사람수만큼 준다. 좀 뜬금없지만, 공짜니 일단 식권을 받아든다.
식당은 한의원 바로 앞에 있는데, 상업적인 식당이라 하긴 좀 그렇고, 꼭 동네 밥집같은
느낌이다. 집집마다 밥준비하기 번거로우니 한집에서 맡아서 식사 제공하는 곳 같은
느낌의 집이다. 물론 메뉴도 없고, 나오는 밥도 시골에서 특별함없이 먹을 수 있는
평범한 밥이다.
* 딸
나에게는 두 딸이 있다. 승원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고, 승연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큰 딸은 뭐든지 이해가 빨라 막히는 법이 없고, 작은 딸은 새로운 것을 이해하는데 한참이나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학교에 들어가면 큰 딸은 1등, 둘째 딸은 중간정도 할 것으로 지레 짐작하였는데, 반대로 둘째가 1등을 하고 첫째는 아직 1등을 한 적이 없다.
사람의 능력은 미리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큰 놈은 아빠를 닮아 이해력이 바람처럼 빠르지만 금새 잊어버려서 시험을 치면 꼭 실수를 하는 반면, 작은 놈은 이해는 느릿느릿하여도 한번 배운 것은 잘 기억해 두었다가 차분하게 시험을 보는 것 같다.
한 뱃속에서 나왔지만 성격도 아주 다르다. 큰 놈은 단순하고 순진하며 덜렁거리면서 고집이 세고 속내가 얼굴에 금방 들어나서 화가 나면 얼굴 색깔이 새파랗게 된다.
작은 놈은 주관이 뚜렷하고 차분하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실속을 다 차린다.
둘이서 싸움이 붙으면 엄마는 자기 성격을 닮은 작은 놈을 편드는 것 같고 나는 내심 큰 놈을
편들게 된다. 옆에서 보면 심하다 싶어 간혹 와이프에게 '왜 일방적으로 큰 놈만 야단치는지' 따지고 들면, 둘째는 자기 일을 척척 알아서 잘하는데 큰놈은 엄마 말을 잘 듣지 않고 빈둥거리는 때가 많다고 한다.
요즘은 두 놈이 의기 투합하여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매일 조른다.
나도 강아지의 순진한 눈망울과 숨결을 느끼고 싶은 데는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정작 강아지를 돌볼 아이엄마가 귀찮다고 결사반대이다.
내년 생일쯤에 선물하겠다고 시간을 벌어놓았지만 아이들이 요구가 만만찮다.
* 한의사
8년 전의 이야기이다. 딸 둘을 낳았더니 어머니와 와이프가 아들을 가져야겠다고 난리였다.
집안 족보에 아들을 올릴 수 없어 대가 끊기는 아픔이 있기는 하지만, 정작 나는 아직 한번도 아들에 대한 아쉬움이나 욕심이 없다.
그러나 마누라의 등살에 못 이겨 결국 아들을 잘 낳게 해준다는 용한 한의원을 찾아갔다.
내 고향 봉화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상운면에 가면 '혜성한의원'이라는 곳이 있다.
고교시절에 가 보고 15년 만에 다시 들렀던 것인데 남루하고 허름한 기와집은 여전하였으나 약효가 서울까지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예전에 없던 번호표와 식권을 나누어 주면서 순서가 될 때까지 점심 먹고 기다리라고 한다.
외양간 같은 곳에서 한의사가 맥을 짚고 처방하면, 동네사람처럼 보이는 4-5명이 즉석에서
한방재료를 던져 넣으며 한약을 제조한다. 한의사와 잡담을 하면서 놀이처럼 약재를 만들고 있었는데 톡 쏘는 한약재 냄새가 아니었더라면 무슨 사료공장 같다.
순서가 되어 기다리고 있는데 앞에서 처방을 마친 사람이 "돈이 좀 모자라는데 나중에 갔다 드리면 안 될리껴?('됩니까'의 사투리)" 하며 외상을 요구하자, 벌써 나이가 지긋해진 한의사가 NO타임으로 대뜸 "그럼요, 농사 잘 지어서 돈 생기면 그 때 갖다 주이소!"
너무나 오랜 만에 들었던 구수한 대화였다.
20여 년 전에도 우리고모가 딸 하나를 낳고 아이가 생기지 않아 이 곳에서 한약을 지어먹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 때도 고모는 약값을 외상으로 했다.
당시 고모에게 약값이 있었지만 소문만 듣고 와서 약효를 반신반의하였기 때문에 일부러 엄살을 피웠던 것이다. 그 때의 대답도 그랬다. "약 먹어 보고 아기 생기면, 돈 갖다가 주소!"
6년 이상 태기가 없던 고모는 이듬해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았지만 바로 찾아가지를 않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양심의 가책이 되어 나중에서야 찾아가 약값을 갚았다고 한다.
물론 외상변제를 독촉하는 전화를 한번도 받은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원래 나는 한의사를 불신하는 편이다.
디스크 있는 환자가 양방병원을 찾아가면 물리치료나 해 주고 그냥 지내보란다.
답답하기 그지 없는 처방이지만 어떤 한방병원에 가면 한재에 30만원 하는 약재를 권유하면서 6개월만 '잘 ' 먹으면 틀림없이 회복된다고 장담한다.
웬만한 병이라면 6개월 정도 지나면 약을 먹지 않더라도 저절로 낳지 않을 까도 싶지만, 대학병원에 부속된 한방이라서 그 말을 믿고 다녔는데 허리는커녕 정신병만 더 악화된 환자도 있
었다. 디스크 치료에 대해서는 어쩌면 뾰족한 처방이 없는 것이 바른 처방인지도 모른다.
우스개 소리로 말하자면 양방의사가 30만원을 벌려면 3~4명의 의료진과 함께 남의 배를 째고 수술을 하고, 수술 후에도 환자 예후에 대해서 한의사에 비하며 엄청난 리스크를 져야 한다.
그에 비하면 한의사는 리스크가 거의 없는 듯 하다. 한방은 약효를 검증하기도 어렵고, 설사 약효가 전혀 없었다 하여도 한의사를 욕할 수가 없다. 우선은 환자가 금기로 된 음식을 피하고 약을 제대로 먹었는지 따져 봐야하고 아무리 좋은 약이라고 해도 특수체질이어서 약효가 없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약효이지만 맥을 짚으면서 "젊은 양반이 맥이 왜 이렇게 약하지?"하고 노골적으로 핀잔을 주고, 통상 옆에 서있던 마누라가 황급히 놀라서 약값에 개의치 않고 가장 좋은 보약을 주문하게 된다.
한방에 대한 개인적인 불신은 별개로 하더라도 봉화 혜성한의원 의사는 세 가지 측면에서 나는 뜨거운 존경심을 갖는다.
첫째는 소문나고 검증된 의술이다. 듣기로는 그 분의 아버지가 한의사여서 어릴 적부터 보고 배울 수 있었고, 평생을 연구해서 높은 경지에 다다른 것 같다.
둘째는 그의 인술이다. 한의사 권위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도 없었던 한방의원 분위기가 기억 난다. 보조인 중에서 신체가 불편한 분도 끼여 있었지만 원장과 보조인들이 어우러져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였고 돌이켜 생각하면 그것이 요즘 말로 GWP의 원조였던 것 같다.
진찰과 처방이 끝나고 짧은 시간 동안 한의사는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하였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려울 때마다 자기를 도와준 좋은 글귀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나에게도 액자를 하나 선물하였다.
다음에 소개할 "참는 마음"이 그것이다.
그것의 의미를 모르고 처음 몇 년간은 장롱 구석에 쳐 박아 두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신발장 위에 그것을 올려 놓고 출근하면서 한번 그리고 퇴근하면서 한번씩 쳐다보게 되었다.
한의사 말처럼 회사생활에 고비가 있었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나의 능력보다 이 글귀의 도움이 더 크게 작용하였다고 생각한다.
비록 한약을 먹고 아들을 잉태하진 못했지만, 아들 대신에 이 글귀가 내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으니 이것이 한의사의 인술(仁術)이 아닐까 싶다.
셋째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이다. 거의 매일 돈없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한약재를 처방해 주었겠지만 그런 소문은 서울까지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한의사는 돈도 많이 벌어서 봉화시내에 있는 양방병원(준종합병원)을 통째로 인수하였다고 이야기 들었다.
세상에는 소탐대실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명예와 부를 동시에 이루어 낸 그분의 인간승리를 감히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고 부르고 싶고, 액자에 있는 "참는 마음"을 전한다.
'[자료실] > 유익한 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실액기스 만들기(2) (0) | 2008.05.07 |
---|---|
매실엑기스만드는법(1) (0) | 2008.05.07 |
대한민국 화폐 변천사 (0) | 2007.11.26 |
산삼 사진모음 (0) | 2007.10.10 |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드라이브 (0) | 2007.10.05 |